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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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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국회가 걸어가야 할 ‘좁은 회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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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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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탁 님께서 2024-03-21 에 작성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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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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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역사에서 어떤 국가는 발전하고 어떤 국가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한 설명은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의 오랜 화두였다. 인종이나 민족의 우월성으로 설명하는 제국주의 시대의 편견들은 차치하고, 석학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종교나 윤리를 발전 요인으로 거론한 적이 있고, 근래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총,균,쇠’의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위치 및 여건 차이를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로는 같은 인종의 단일 민족이면서 동일한 종교 및 윤리 배경에서 출발하고 지리적 환경이 유사한 대한민국과 북한간의 현격한 발전 차이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하에서 한국을 포함한 몇 가지 해외사례를 토대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 책이 바로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이 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다. 이에 따르면 한 국가의 성공 여부는 인종이나 민족, 종교나 윤리, 지리적 위치나 여건이 아니라 각 국가가 채택한 ‘제도의 성격’, 즉 재산권 확립과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하에서 각자의 노력에 따른 경제적 성과가 자신에게 귀속되는 ‘포용적 경제제도’인가 아니면 불완전하고 부당한 제도하에서 자신의 노력이 다른 집단에 귀속되는 ‘착취적 경제제도’인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속 저서에서 발전 요건인 포용적 제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가 토머스 홉스가 말하는 ‘리바이어던’의 전제정치나 그 정반대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무능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서로 견제하면서도 다원적이고 균형적 체제, 즉 전술한 두 체제 사이에 난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들 저서가 대표 사례로 밝히고 있듯이 한국경제는 시대별 차이는 있지만 경제제도와 정치체제의 양 측면에서 성공한 국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같은 한국경제 내에서 유독 전력 등 에너지산업이 여건상 우리와 유사한 OECD 국가들에 비해 아주 낙후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 비교에 중점을 둔 이들의 저서를 언급하면서 특정 산업의 국가 간 차이를 질문하는 것 자체가 이들의 관점과 다른 좀 엉뚱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산업이라도 국가 간 시장제도와 정치규제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전력 등 에너지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제도적 상황을 보자. 정부의 정치적 성격에 따라 급변침을 반복하는 정책과 계획, 사실상 독점판매라는 시장진입의 제도적 장벽, 정치적으로 통제되는 소매요금과 이로 인한 적자와 빈사상태의 산업생태계, 변동비 반영시장(CBP)과 정산조정계수라는 이상한 성과배분제도, 지역신호 부재와 지역간 수급불균형 심화, 그 해결을 위한 계통보강 재원과 건설의 불확실성, 그 상황에서 증가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변동성과 경직성, 이로 인한 계통신뢰도와 계통복원력 하락 등등. 이러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경우는 다른 OECD국가는 물론 상위권의 개도국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이 상황에 전술한 제도적 관점을 응용하여 한국의 전력 등 에너지산업 전체가 경직적이고 부당한 제도로 인해 성공한 한국경제에 속하면서도 노력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착취적 제도’하의 ‘내부식민지 산업’과 같은 신세라면 너무 자조적 평가일까?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러한 제도를 강력하게 뒷받침해 온 것이 리바이어던과 같은 ‘전제적 정치개입’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진단일까?
이제 곧 총선을 거쳐 차기 국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탄소중립이나 기후정치를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우리 에너지산업 전반에 구조화되어 있는 경직적이고 불합리한 시장제도와 그 버팀목인 전제적 정치개입 개혁이 최우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에너지 업계에 와닿는 선거구호는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가 아닐까 한다. 추상적인 탄소중립이나 정파적인 기후정치보다 시장제도와 정치규제의 개혁이 우리나라 기후변화와 탄소중립의 핵심과제이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차기 국회는 ‘넓은 로텐더 홀’에서 정파적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어렵고 힘들지만, 제도개혁과 다원적 정치를 위한 ‘좁은 회랑’으로 걸어가기를 기대한다.
(전기신문 월요객석 202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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