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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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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과 전력수급기본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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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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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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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탁 님께서 2023-08-26 에 작성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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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대다수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이는 14세기의 한 수도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로서 독실한 신앙의 원로 수도사가 희극적인 해학과 풍자를 담은 서적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된다는 생각에 그 서적의 페이지마다 독극물을 묻혀 책을 읽는 수도자들을 교묘하게 살인하는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의문의 사건을 다룬 유명한 추리소설들이 많지만 그 중에도 이 소설이 최상급의 극찬을 받는 것은 흥미 위주의 추리를 넘어 두 인물, 즉 현실을 멀리하면서 독실하고 경건한 신앙을 추구하는 베네틱트파의 원로 수도사(교묘한 살인자)와 현실 속에서 청빈하고 이성적 신앙을 추구하는 프란치스코파의 수도사(사건 수사자)를 통해 당시 수도원운동의 내부 파벌, 그 저변에 깔린 중세철학과 근대철학간의 관점 차이를 소설의 내용과 줄거리 속에 논리적이고 탄탄하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독자에게 진정으로 전달하려는 것은 이러한 신앙이나 철학간의 어렵고 낯선 논쟁이라기보다 ‘우리가 확고하게 믿는 가치와 진리를 올바르게 지키는 자세는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익숙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소설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교의 적은 다른 종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단자가 성인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선지자 중에서 나오듯이, 그리스도교의 적은 경건 그 자체에서, 하느님 또는 진리에 대한 과도한 사랑에서 나온다...(중략)...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 유일한 진리다.’
엄격하고 진지한 신앙을 추구하는 원로 수도사는 그 '불온한' 서적을 어떻게 하든 다른 수도사들이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신앙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오히려 그리스도교에 어긋나고 내부의 적이 된 셈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 이는 어쩌면 14세기 소설 속의 수도원만이 아니라 21세기 현실의 한국 정치와 사회 그리고 에너지문제에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정부는 서둘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계획은 세워야 한다. 하지만 기우인지는 모르나 우려의 시선 역시 적지 않다.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거의 십여년간 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가 정치적 스크럼을 짜서 치열한 정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믈론 두 가지 전원은 우리나라 탄소중립에 각각의 역할이 있고, 각자가 내세우는 가치와 진리에 나름 근거도 있다. 문제는 과거 ‘원전 올인’과 ‘탈원전’ 과정에서 서로 적대시하고 상대편의 전횡으로 자신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각 진영이 믿는 가치와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그 피해를 자초한 측면은 없는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원전 59%가 무리한 재생가능에너지 30%를 유발하고 이것이 또 다른 지나침을 야기할 가능성 말이다.
이렇듯 외형상 첨예한 대립각이지만 양자간에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가지 전원 모두 수용성에 대한 공권력 지원과 사고위험 공유이나 공적자금에 의한 보조금 지급과 같이 정부의 지원 없이 시장에서 제 발로 서기 어려운 존재들이다. 그래서인지 양쪽 모두 자신의 ‘실력이나 경쟁력’보다는 정치적 밀물이 들어올 때 일단 큰 배를 띄우고 보자는 식으로 ‘정권이나 권력’에 기대려는 성향 역시 적지 않다. 정치적 썰물이 되면 현실이란 암초 위에 덩그러니 걸려 좌초하더라도... 그 좌초를 상대편 탓으로 돌리는 것도 비슷하고, 정부주도의 개발연대기를 한참 지난 상황에서 정부계획에 원하는 수치를 넣어 놓으면 그대로 될 것이라고 믿거나 자족하는 것도 비슷하다.
소설의 제목이 ‘장미의 이름’이지만 정작 ‘장미’라는 단어는 소설의 끝 문장에 가서 등장한다,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소설 얘기로 글을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그 패러디로 하자. “지난 날의 '장밋빛 수치'는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정쟁뿐'.” 기왕에 시작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이니 이번에는 각자가 믿는 가치와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없는지 스스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기신문 월요객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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